
한대협타임즈 배상미 기자 | 최근 아르헨티나에서 '해외 직구'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초고속 패스트패션 플랫폼 쉬인(SHEIN)이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며 '쉬인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 취임 후 정부의 시장 개방 정책, 환율 우위, 관세 인하 및 세금 부담 완화, 그리고 디지털화된 소비 습관 변화가 맞물리면서 해외 직구 시장이 작년 말부터 크게 확대된 결과다.
특히 쉬인은 '빨리 쓰고 처분해도 좋은 패션'이라는 패스트패션의 개념을 넘어, 중간 마진 없는 제작자-소비자 직구 시스템과 압도적인 가성비로 아르헨티나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다. 구체적인 데이터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의류협회(CIAI)는 올해 들어 5개월간 자국민의 해외 의류 구매액이 15억 달러(약 2조 원)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전했다.
이 중 해외 직구는 211% 증가했으며, 특히 5월 한 달에만 전년 대비 253%의 놀라운 성장세를 보였다. 현지 매체 '이프로페셔널'은 과거 이름조차 생소했던 쉬인이 이제는 소셜미디어는 물론 시민들 일상 대화의 일부가 될 정도라고 보도하며 '쉬인 신드롬'의 위력을 실감케 했다.
공격적 마케팅과 Z세대 '입소문' 전략 주효
팬데믹 기간 아르헨티나에 '조용히' 상륙했던 쉬인은 지난해 말 정부의 개인 해외 직구 조건 및 수입 장벽 완화 정책에 힘입어 성장세에 가속도를 붙였다. 여기에 '공격적 마케팅' 전략이 신드롬급 인기를 폭발시킨 주요 요인으로 분석된다.
쉬인은 다양한 현지 인플루언서를 활용한 마케팅과 온라인 '입소문' 전략에 집중했다. 특히, 50달러 이상 구매 시 운송비 무료, 첫 구매 운송비 무료, 그리고 관세지급인도조건(DDP) 배송으로 운송비, 세금, 관세 등 모든 비용을 판매자가 부담하는 파격적인 전략을 펼쳤다. 아르헨티나인들 SNS에서는 '쉬인에서 주문하는 법' 등 관련 동영상이 대량 공유되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쉬인의 이러한 마케팅 전략은 유통망, 소비 패턴, 정책 대응, 리셀 생태계 등 현지 맥락을 면밀히 분석하고 적용한 결과로 평가된다. 쉬인이 단순히 '싸구려' 제품만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10달러 미만의 저가 티셔츠부터 가성비 뛰어난 중상 수준 가격의 제품까지 폭넓게 제공하며 현지 소비자의 다양한 니즈를 충족시키고 있다는 점도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11월 멕시코에서 쉬인 카탈로그를 들고 방문 판매에 나서 성공한 여성들의 사례는 전통적 방식과 결합한 쉬인의 유연한 마케팅 전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현지 산업 '고사 위기' 우려 증폭…'저가'의 그림자
그러나 쉬인 등 중국 플랫폼의 폭발적인 성장은 아르헨티나 현지 의류 산업에는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소비자들이 다양한 옷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어 환호하는 반면, 현지 의류 생산업체들은 중국 저가 제품과의 불가능한 가격 경쟁에 직면하며 고사 위기에 놓였다.
아르헨티나 의류·섬유재단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7,300만 kg의 의류가 수입되었는데, 이는 **전체 의류 소비의 약 70%**를 차지하는 수치다. 현지 원사업계(FP) 보고서 역시 올해 1분기 수입 의류 폭증으로 수입품 비중이 전체 의류 판매의 67%로 치솟았다고 밝혔다.
1월부터 5월까지 아르헨티나의 글로벌 패스트패션 수입액은 2억 5,000만 달러에 달하며 전년 대비 77% 급증했고, 쉬인·테무·알리익스프레스 등 중국 기업이 급부상 중이다. 이러한 상황은 현지 의류 산업의 고용 감소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자본의 각축장 된 중남미 시장…'저가' 뒤 숨겨진 논란들
지난달 23일 국제 테크 저널리즘 매체 '레스트 오브 월드'는 중남미의 쉬인 성장세를 집중 분석하며 틱톡 숍이 쉬인·테무와 치열하게 경쟁 중이며, 이 지역이 쉬인의 핵심 전략 시장이라고 지적했다. '레스트 오브 월드'는 서구 이외 지역의 테크·디지털 현상에 초점을 맞춰 현지 시각에서 심도 있게 다뤄온 매체다.
이들의 분석은 쉬인·테무·틱톡 등 중국계 자본에 기반을 둔 글로벌 기업들이 서로 다른 사업 모델과 정체성, 시장 전략으로 주도권 싸움을 벌이는 시대임을 상기시킨다. 특히 비상장 기업인 쉬인의 경우 국제적 사모펀드가 주요 투자자로 알려져 있어, 그 불투명한 정체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한편, 쉬인은 디자인 도용 등 지적재산권 침해로 여러 차례 소송을 당했으며, 아동 노동 사례나 신장 위구르에서 생산된 면화 및 그곳 강제 노역과의 연관성 등 공급망 윤리 문제도 지속적으로 지적받고 있다.
지난 1월 7일 영국 의회 청문회에서는 상설무역위원회 의원들이 쉬인의 유럽 지사 법률 고문을 불러 이 문제를 추궁했으나 답변을 얻지 못하자 "의도적 무지"라며 강하게 비판했다는 소식이 가디언 등 외신을 통해 전해졌다.
지난 10일 스페인어 매체 'LM네우켄'은 쉬인의 중남미 성장세를 짚으며 "제품의 실제 가격은 대체 누가 지불하는 것이냐"며 저가의 비밀 뒤에 숨겨진 문제들을 꼬집기도 했다.
아르헨티나를 넘어 중남미 전역으로 확산되는 쉬인 신드롬이 소비자에게는 경제적인 선택지를 제공하지만, 현지 산업과 노동 시장, 그리고 기업 윤리 측면에서는 깊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