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빨리, 더 싸게' 택배 전쟁의 끝은 소비자 부담? 편의점까지 가세한 초고속 경쟁 '우려'



눈 뜨면 다음 날 새벽 문 앞에 도착하는 로켓 배송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의 기대 심리가 끝없이 높아지면서, 국내 택배 시장이 '초고속 배송' 경쟁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심지어 편의점 CU까지 자체 물류망을 활용, 택배 접수 시 익일 배송 서비스를 예고하며 경쟁에 불을 지피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속도전' 뒤에는 택배 업체의 수익성 악화와 함께 결국 소비자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4일, 편의점 CU는 자체 물류망을 기반으로 택배 접수부터 배송까지 24시간 내에 완료하는 초고속 배송 서비스 도입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자체 택배 및 해외 특송 서비스에 더해 '더 빠르고 편리한' 배송을 원하는 소비자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처럼 유통 공룡부터 편의점까지 택배 서비스 강화에 나서면서, 기존 택배 시장의 경쟁은 더욱 심화되는 양상이다. '더 빨리, 더 싸게'를 외치는 소비자들의 높아진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택배 서비스는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지만, 시장 성장 속도는 둔화되고 수익성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실제로 새벽 배송 시장의 선두 주자를 자처했던 한 업체는 결국 서비스 중단을 선언했으며, 주 7일 배송을 강행하는 일부 택배 회사는 노동조합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배송 속도가 곧 경쟁력이 된 쿠팡을 따라 하려다 '가랑이가 찢어지는' 업체들이 속출할 수 있다"며 "결국 택배사들이 이커머스 업체에 부과하는 비용을 인상하고, 이는 고스란히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B2B 새벽 배송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90% 이상)을 차지했던 물류 기업 팀프레시는 지난달 31일, 새벽 배송 서비스 운영을 전격 중단했다. 창업 이후 폭발적인 매출 성장세를 기록하며 누적 투자 유치액만 2000억 원이 넘었던 팀프레시의 갑작스러운 서비스 중단은 업계에 큰 충격을 던졌다. 이는 계획됐던 투자금 납입 지연이 결정적인 원인으로 알려졌다.
 
자체 배송망 구축에 어려움을 겪는 대다수의 유통 업체들은 결국 더 빠른 배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택배 업체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택배 사업을 하는 물류 업체들은 비용 부담이 크지만, 치열한 고객사 유치 경쟁 속에서 더 빠른 배송, 멈추지 않는 배송 서비스를 경쟁적으로 도입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택배 업체 입장에서 '휴일 배송', '새벽 배송'은 고객 유치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막상 이를 실행하기에는 상당한 리스크가 따른다. 통상적으로 새벽 배송이나 휴일 배송은 택배 업체가 배송 기사에게 일반 배송 대비 20~30%의 추가 수수료를 지급해야 한다.
 
택배 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한다면 이러한 프리미엄 배송 서비스 확대를 통해 더 많은 고객사를 확보하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지만, 현재 국내 택배 시장의 성장세는 뚜렷하게 둔화되는 추세다.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의 분석에 따르면, 올해 1~2월 국내 택배 물동량(쿠팡 제외)은 약 5억 8천만 상자로 추정된다. 이는 전년 동기(6억 416만 상자) 대비 4% 감소한 수치다. 택배 물량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커머스 거래액 역시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는 점은 택배 업계의 고민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CJ대한통운은 택배 서비스 시작 32년 만인 지난 1월, 주 7일 배송을 전격적으로 도입했다. 업계에서는 한진, 롯데글로벌로지스 등 주요 택배 업체들도 조만간 주 7일 배송을 시작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이는 택배 노동조합의 강력한 반발을 야기하고 있다.
 
전국택배노동조합은 "한진택배가 주 7일 배송을 강제적으로 시행하려 한다"며 "노조와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결국 고객사 유치를 위해 새벽 배송, 휴일 배송 등 프리미엄 서비스를 도입한 택배사들은 배송 물량이 기대만큼 늘어나지 않을 경우, 비용 증가로 인한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유통 업계에서는 이미 높아진 소비자들의 배송 기대치를 고려할 때, 과거처럼 배송에 2~3일 이상 소요되거나 휴일 배송이 중단되는 시대로 회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업계는 경기 회복을 간절히 바라면서도,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출혈 경쟁과 가격 인상을 동시에 예상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CJ대한통운은 이미 지난 1일부터 온라인 쇼핑몰과 편의점 등 기업 고객에 대한 택배비를 최대 100원 인상한 바 있다.
 
증권가 역시 택배 사업자들의 실적 부진을 전망하는 어두운 보고서를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대신증권은 지난 11일 CJ대한통운의 목표 주가를 기존 13만 원에서 11만 원으로 하향 조정했으며, 미래에셋증권 류제현 연구원은 "CJ대한통운의 택배 부문은 이커머스 시황 부진에 따른 물동량 감소로 역성장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유통 업계 관계자는 "영향력 있는 대형 업체들은 가격 인상을 통해 수익성을 방어하며 버틸 수 있겠지만, 규모가 작은 업체들은 고객사 유치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출혈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소비 심리 위축이 지속될 경우, 택배 시장 전반에 걸쳐 위기에 직면하는 업체들이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결국 '더 빠르고 싼' 배송을 향한 치열한 경쟁의 종착역은, 고스란히 소비자들의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씁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